책속으로...
<1>
1.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했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우스 땅 : 특정지역이 아니며 ‘의논하다’ 혹은 ‘토론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사야서의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의미를 지닙니다. 본 욥기가
그리스도와 선민들과의 영적 쟁변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24장18절
발람의 예언 : 이스라엘은 그 원수 에돔과 세일을 그들의
산업으로 삼을 것이다. ❧ 세일: ‘털이 많은’의 뜻으로
‘에서’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일의
후손들이 살던 세일 산에 호리족이 살았고 그 후에 에서가
그 곳에서 살았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이 그 곳에 살았다고
전해지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인 의미가
본문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돔과 세일을
동의어로 쓴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에돔 = 에서
= 우스 = 세일 = 장자의 명분을 버린 자 = 유태인 = 모든
멸절 당하는 세대의 공의를 관장하던 자’가 됩니다. 이
우스 땅이 실제 성경 상으로는 그리스도가 오신 유대 땅이
되는 것입니다. 우스 땅이란 멸절된 선민의 땅이며
어둠에 덮인 온 세상을 뜻하는 것이고 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시편
60장에는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변론의 승리로 십자가사건이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60장8절: 모압은 내
목욕통이 될 것이며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 것이다. 블레셋은
나를 외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어가게 하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 것인가. ❧ 신을
던진다.: 세상에 왔다간 흔적인 이전공의를 관장하던 자들을
멸했다, 혹은 ‘세상을 이겼다’는 증거를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주어서 멸절의 증거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내 그들의 멸망의
증거로 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다가
가시면서 벗은 신발이 곧 욥기 입니다. 결국 장자의 명분을
버린 선민들에게 와서 십자가에 달림으로 던지고 가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에돔에 인도할꼬 : 이 말씀은 아가서2장4절의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 와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 시편60장8절의
견고한 성이란 견고한 논리적 구조를 가진,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림으로 공의가 실현되며 완성되는 성령의 법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논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2.
그가 낳은 자식들은 남자가 일곱이며 여자가 셋이었고 ❧
남자 일곱: 남자는 선민으로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구원을
얻은 자들의 수입니다. 일곱 명이 아니라 선민 중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수를 뜻합니다. 여자가 셋: 여자란 낳을
수 있는 자로 그리스도 이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된 이방인들의 수입니다. 셋인 이유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기에 셋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복음서의 설명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에서 셋은 셋째 하늘이나 삼층, 노아의
세 아들 등 하나님이 직접 베푸시는 은혜의 수입니다. 삼십
배가 그것이고 계시록의 사방에 있는 세 개의 문이 그것입니다.
3.
그가 가지고 있던 소유물은 양 칠천, 낙타 삼천, 소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에 종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입니다. ❧ 양이 칠천: 양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사람의 수이고 7은 ‘만민 중에’를
말하고 천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
약대 삼천: 이것은 그리스도가 복음을 전파하신 이후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 구원받는 자의 수며 역시 꽉 찬 수로 표현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입고 왔던 옷이 약대 털옷입니다.
약대는 광야로 변한 악한 세상에서 생활하기 적합한 짐승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이후에 구원을 획득하게 되는 이들은
모두 부정한 가운데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이 짐승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세상이 완전히 부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부정을 상징하는 누런 털옷을 세례요한이 입고 있었다고
묘사된 것입니다. ❧ 소가 오백 겨리: 소는 일꾼을 상징합니다.
오백이란 죽음을 인지한 선민의 수입니다. 사도들도 이
오백 겨리의 소에 해당합니다. 오는 죽을 자이면서 하나님을
향한 자들의 수이며, 선지생도 오십인도 그런 의미이며,
백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가 씨를 뿌려 얻은
수이고, 또 이것이 일천이 안 되고 아직 오백인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나누어서 표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암나귀가 오백: 나귀는 이방인을
뜻하며 암나귀라고 한 것은 낳을 자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이전에 선민들에게는 낳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이후의 제자들은 모두 낳아야 하는 소명이 있지만 그들은
낳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육신의 자식을 낳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낳음이 되었습니다. 그 낳음이 곧 선민으로
낳아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이후의
모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를 통해 영이 사는 자를
낳아야 합니다. 그래서 암나귀란 그리스도 이후 죽을 수밖에
없던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살아난 이방인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가시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본나라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하여
보내지셨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
모든 사람들 즉 양, 나귀, 약대, 소는 모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의미입니다. 십자가 이전에 공생애
기간동안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된 모든 이들을
말합니다. 뒤편에서는 위의 것들을 모두 배로 받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그 배라는 것도 숫자를 말함이 당연히
아닙니다. 신구약을 통합하는 완전함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하생략>
<본문>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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